학생중심교육으로 가는 길

 

기술과 정보가 정신없이 변하는 지식기반사회의 특징으로 대졸자가 은퇴할 때까지 직장을 12번 옮기고 직업을 4번 바꾼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직업을 바꿀 때마다 새롭게 요구되는 능력과 기술을 지니기 위해 재교육을 받아야 하니까요. 말단 직원부터 최고경영자까지 사회인 모두가 주기적으로 변신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새 시대는 학습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죽어라고’ 공부하는 세상이 아니라 이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평생교육 시대가 온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 기관들은 더없는 호황기를 맞이한 셈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두가 교육을 받으러 대학으로 몰려야 하는 세상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은 매해 되풀이되는 정원미달로 울상입니다. 사회의 변화를 대학이 따라 주지 못해 교육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혹평이 자주 등장합니다. 학생들이 대학의 고객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한편 기업인들은 대졸 신입사원을 “불량품”이라고 규정하고 대학으로부터 “아프터 서비스”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기업은 학생들이 그저 생산품에 불과하고 자신들이야 말로 진정한 대학의 고객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정신없네요. ‘품질은 소비자 만족’ 이라는 소비자중심 시장원리가 교육에까지 파고들기 시작하더니만 너도 나도 대학의 고객이라고 아우성입니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높고 높은 스승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사라지고 ‘고객’이라는 단어는 교수를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장사치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중심 개념의 일환으로 들리는 ‘학생중심교육’이라는 구호를 들으면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자중심’이라는 시장 개념과 ‘학생중심’이라는 교육 개념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개와 고양이 둘 다 똑같이 꼬리가 달렸고, 털이 있고, 다리가 네 개씩 있고, 심지어 유전적으로 비슷하더라도 서로 전혀 다른 성격과 체질과 습관을 소유하고 있듯이, 교육기관과 기업이 똑같이 시장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더라도 두 기관의 목표와 자금조달과 환경은 전혀 다릅니다. (Birnbaum, Management Fads in Higher Education, Jossey-Bass, 2000.)

‘소비자중심’은 대학을 경영하는 보직교수와 행정직원들이 지녀야할 시장경제 사고관입니다. 예를 들어 정원미달이라는 문제는 소비자중심 사고관이 결여된 행정으로부터 비롯한 문제입니다. 사회의 수요 대신 강의실 책상 수에 따라 정원을 채우려는 발상부터가 문제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료금속공학의 경우 한국이 배출하는 졸업생은 미국, 독일, 일본의 졸업생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으니 재학생 수가 비록 책정된 정원보다 적어도 사실상 정원초과인 셈입니다. 대학 본부는 학생을 한명이라도 더 모집하려는 노력에 앞서 사회가 요구하는 학습의 장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비자중심 사고관은 강의실 안에서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서비스업 종업원과 고객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소비자중심 사고관을 외면해도 무관하되 학생중심교육 사고관은 반드시 지녀야 합니다. ‘학생중심’이란 개념은 웨이터가 고객의 기분을 맞추듯이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수님께서 강의를 준비하실 때 “내가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할까”(교수가 중심인 행위)를 생각하기 보다는“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끔 할까”(학생을 중심에 둔 행위)를 먼저 고려하는 것입니다.

학생중심교육은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조금씩 떼어주는 지식중개도매상 역할에서 벗어나야 가능합니다. 그대신 교수님께서 평생학습자로써 모범을 보이고 학생들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주는 학습사회의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 학생중심교육은 교수들이 진정한 스승이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