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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반드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 조벽, 최성애 명진 출판 1998. 3. 17. 제 30회 청소년 권장 도서 선정 1999년 국방부
권장 도서 선정 |
교수는 지식
유통 업자가 아니다
학교의 기와 풍에 대해서 쓰다 보니 갑자기 ‘삼풍’이 기억 난다. 95년 8월 공대 학장들 모임에 초청 받아 <공학 교육의 문제와 해결 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한국 대학들의 최대 관심 중 하나는 대학원 설립과 증진이었다. 나는 학부가 위태하니 대학원에 대한 욕구를 자제했으면 했다. 부실한 학부 4년 위에다 대학원을 얹히는 것은 4층짜리 삼풍 건물 위에 1층을 더 얹히는 격이라고 ‘경고’했었다.
미국에서는 공학 박사 한 명 배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박사 과정만 따져서 자그마치 25만 불이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 예산으로 운영하는 공대가 두세 곳 있다. 그러나 나머지 60여 공대의 입장으로선 힘겨운 예산이다. 대학원 부실 공사가 눈에 훤히 보이는 일이다.
교수의 과욕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교수는 욕심쟁이여야 하니까.(지식에 대한 욕심!) 그러나 그렇다 해서 교수를 탓할 순 없다. 대학원의 증진은 앞으로 어차피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기 상조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던데 한국의 대학은 왜 그리 급히 서두르는가. 느긋해 보이는 학자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다.
대학원이 필요한 이유는 행정측에서 교수들에게 연구 실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연구 안 하는 교수에겐 봉급 덜 준다”라는 신분 기사처럼 한국의 교수는 연구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심지어는 전문대 교수에게도 논문 실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사람을 완전히 병신 만드는 어이없는 요구다.
그래서 난 교육 개혁은 교육 행정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가지 예만 들어 보자. 일반적으로 교수 하면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스승과 책에 파묻혀 연구하는 학자가 떠오른다.(요즘에는 별의별 연상을 다 하게 하는 신문 기사도 있지만…) 교수가 둘 다를 잘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나는 보이어의 <4차원 교수의 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 대학을 방문하면 총장이나 처장한테 항상 그것을 권한다. 세계 교육학의 권위자였던 (고)보이어는 교수의 능력과 업적을 평가할 때 교육, 연구 이렇게 두 가지만을 놓고 따지지 말고 최소한 네 종목으로 확장해서 보라고 말한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일, 지식을 응용하는 일, 그 지식을 통합시키는 일, 그리고 지식을 이해시키는 일이 그 네 가지다.
보시라. 이렇게 각자의 장기대로 평가가 이루어지면 교수님도 다양한 업적을 인정받으니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다. 뭔가 꽉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보시라.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학자의 도를 지식에다 빗대어 새로 정립하지 않았는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지식을 단순 전달하는 일이 아닌, 지식을 이해시키는 일이라 한다. 교수는 이제 지식 유통 업자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