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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반드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 조벽, 최성애 명진 출판 1998. 3. 17. 제 30회 청소년 권장 도서 선정 1999년 국방부
권장 도서 선정 |
<서문> 내가 본
한국인의 희망
올해 초 아마 1월이었던 것 같다. 한국 주요 일간지의 사설 중에 이런 얘기가 실렸다. 요즈음 겪는 한국의 총체적 위기는 한국인의 성급한 성격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신문을 읽다가 나는 다소 짜증이 났다. 본질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와는 생각이 정반대였다. 나는 한국인의 성격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으니까. 다른 무엇보다 한국인의 품성이야말로 희망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참에 구상하고 있던 책쓰기를 서둘렀다. 어쨌든 그 사설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많은 자극을 준 셈이 되었다.
물론 한국에는 뜯어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다시 말해 한국인의 성격이나 품성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 등의 인간 외적인 틀이다. 특히 지적하자면 단언코 교육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심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한국사람만 빼고 다른 것은 다 바꾸어도 된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잘못된 교육이 잘못된 제도를 만들고 잘못된 사회구조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교육을 바로 잡아야 한국인의 본래 품성이 되살아난다.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다. 이건 내 눈이 밝아서, 나만 잘난 눈을 가져서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실제가 그러하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초청강의가 올 때마다 빠짐없이 비행기를 탄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이런 나를 보고 놀라워한다. 어떻게 그렇게 자주 비행기를 탈 수 있느냐고. 비행기 타는 일이 지겹지도 않느냐고. 물론 열 몇 시간씩 비행기 속에 갇혀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난 꼬박꼬박 한국을 향한다.
그만큼 한국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외국에서 살아 온 내가 만사를 제끼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애국심 때문에? 그건 솔직하지 못하다. 단순히 애국심만으로 지탱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희망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에 대해서라면 나도 놀랄 만한 열정을 솟아나게 하는 이유다. .
IMF 시대를 겪는 우리들의 마음은 모두가 착잡하고 어둡다. 다들 무엇이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한숨 섞인 자문을 던져 본다. 그리곤 정치가 무능한 탓이다, 재벌이 너무 오랫동안 특혜를 누려온 탓이다, 국민 모두에게 거품이 너무 심했다 등등 저마다의 원인 분석 또한 빼놓지 않는다. 모두 맞는 말들이다. 문제는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하는가일 것인데 나는 '교육이 0순위'라고 외치고 싶다. 교육 이데올로기가 바뀌어야 한국의 교육이 바뀌고, 교육이 바뀌어야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확신 때문이다. 나는 지난 1994년도에 서울대 객원교수로 강의할 때 학생들이 들려 주었던 우스갯소리를 늘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장학관이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교실을 둘러보던 중 창가에 놓여 있는 지구본이 눈에 띄어 마침 옆에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 이 지구본이 왜 기울어져 있나?" 학생은 얼떨결에 당황해서 " 제가 안 그랬심더 "하고 대답했다. 장학관은 그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어 이번에는 교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이 지구본이 왜 비뚤게 서 있지요? " 교사는 질책당하는 줄 알고 대답했다. " 제가 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그리되었심더 ." 이제 장학관은 화가 났다. 그래서 교장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교장이 대답하길, " 허허, 참 잘 아시면서, 그게 국산품 아님니꺼!"
학생들은 농담으로 들려 준 것이었겠지만 농담치곤 대단히 뼈 있는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한국교육의 다섯가지 걸림돌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즉, 책임회피(내가 안 그랬으니 다른 애가 그랬을 것이다), 타성적 무기력(내가 오기 전부터 그랬으니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불신감(국산품은 못 믿겠다). 덧붙여 이 세 가지 답변 속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나 있다.
즉,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 일까?'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핵심을 못 보는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과 '어떤 답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에 대한 창의력 부족이다. 우선 이 다섯 가지의 걸림돌부터 제거해야만 한국인의 본성이 살아난다. 그리고 본성이 살아나는 자리에 희망이 자리잡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표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최교수와 나는 사적으로는 부부 사이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는 최성애 교수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둘이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둘의 생각을 근접시킬 수 있었다. 최교수는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통계학이 결합된 인간발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 남다른 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교수의 시각과 지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종 작업은 지난 1월에서 2월 중순까지 이루어졌다. 최교수가 덕성여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으로 들어간 탓에 떨어져 지내다가, 방학 기간 동안 미국으로 건너와서부터 본격적인 공동 집필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층에서, 아내는 아래층에서 밤새 작업하고 다음날 서로 맞추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한국인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다보니 나도 최교수도 신이 나서 가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엔 국수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특이하다면 특이한 과정을 거치며 자랐다. 나는 카리브 해의 아름다운 나라 자마이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열한 살까지는 한국인만 보고 자랐다가, 자마이타에서는 온통 흑인 친구들 속에 둘러싸인 유일한 동양 학생이었고, 그 후 미국에서 다닌 대학에서는 현재 일하고 있는 미시간 공대에서처럼 거의 백인들 속에서 생활했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경계를 넘나들던 체험 때문에 다른 이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 일들도 내겐 의미 있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때문에 나는 국수주의자건 민족주의자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되고 싶지도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세계주의자쯤 될까.
나는 한국인의 개성과 자질을 잘 알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자기 안에만 갇혀 지냈다. 터무니없는 오만과 또 터무니없는 콤플렉스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 뿐이다.
이제 한국인은 스스로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하나씩 장점들을 살려내야 한다.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이 될지, 이제 평가는 독자의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한국인의 희망을 가슴속에 다시 품었으면 한다.
19988년 3월 3일
미시간에서, 조벽